◎ 코스: 한라산 성판악코스(성판악 원점 회귀)
◎ 일정 : 25년 01월 18일 토요일
[01월 18일]
05시 20분 기상
07시 00분 성판악 탐방로 앞 도착
07시 37분 성판악 출발
8시 46분 해발 1000m
9시 00분 속밭 휴게소 도착
9시 34분 해발 1100m
9시 47분 성판악 코스 난도 A등급(어려움) 구간 진입
10시 12분 사라오름 / 한라산 정상 갈림길
11시 11분 진달래 대피소
13시 00분 정상까지 800m 남은 구간
13시 16분 백록담 정상
13시 30분 하산
14시 47분 진달래대피소
15시 31분 속밭대피소
16시 23분 성판악 탐방로 입구
◎ 소요 시간 : 휴식 / 식사 포함 약 8시간 46분
◎ 참여 인원 : 4명
◎ 준비물 : 등산 스틱, 아이젠, 물, 손난로, 간식, 영양제, 얇은 옷 여러벌, 스패츠
정신차리니 1월이 다 끝나간다. 2월로 넘어가기 전 기록을 남겨야지.
2025년 등산의 시작은 한라산이다.



갤럭시 워치로 이번 등산 GPS 기록은 끊김없이 참 잘 잡았는데, 하산 후 식당으로 이동하는 버스 경로까지 포함되어 있다. 하산 후 등산 기록을 멈출 생각을 전혀 못 한 탓이다. 지도상으로만 보고 여기서 출발해서 정상까지 찍었다고 정말 오해할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안내하고 넘어간다.

한라산(漢拏山)
제주도 중앙에 있는 산으로, 높이 약 1,947m, 북위 40° 이남에서 제일 높은 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우리 민족의 삼신산으로 꼽히는 명산이다. 예로부터 한라산은 부악, 원산, 진산, 선산, 영주상, 혈망봉, 여장군 등등 많은 이름으로 불려 왔으며, 한라산의 한은 은하수를, 라는 당기거나 붙잡는다는 뜻으로서, 높은 산이라 은하수를 잡아 당길 수 있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한라산 정상에 있는 백록담은 성록인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4년(세조 10) 2월에 제주에서 흰 사슴을 헌납하였다"고 적혀 있다.
한라산은 동심원상의 등고선을 나타내어 순상화산(楯狀火山)에 속하며, 한라산의 사면은 고도와 경사에 따라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 해안저지대: 고도 200m 이하. 경사도 4° 이하
- 중산간지대: 고도 200m~600m .
- 산악지대: 고도 600∼1, 200m. 경사도 10∼20°로
- 고산지대(정상부): 1,200m 이상. 경사도 20°이상
한라산을 오르는 주요 등산로는 약 다섯 가지가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
1. 어리목 등산로: 어리목산장-사제비동산-만세동산-윗세오름대피소-정상
2. 성판악 등산로: 성판악휴게소-사라대피소-진달래밭대피소-정상
3. 관음사 등산로: 음사-탐라계곡-개미목-용진각대피소-정상
4. 영실 등산로: 영실-오백나한-윗세오름대피소-정상
5. 돈네코 등산로: 가장 긴 등산로. 현재 상태가 좋지 않아 자연 휴식년제로 통제 중인 등산로.
이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등산로는 성판악 등산로와 관음사 등산로며, 한라산탐방 예약시스템(https://visithalla.jeju.go.kr/main/main.do) 에서 사전 예약해야만 입산이 가능하다. 그마저도 눈이나 비, 기상 상황에 따라 예약 취소, 통제 될 수 있으며, 입산은 가능하더라도 정상 부근에서 별도 통제가 있을 수 있다. 통제가 풀려 어찌 올라간다 하더라도 안개나 구름에 가려 백록담은 구경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자료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563
한라산(漢拏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작년에도 느꼈지만,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이 아니고서야 동호회 회원 여럿이서 함께 같은 산을 가긴 어렵다. 각자 고정 휴무가 다르고, 사는 지역도 다르다. 체력조차 모두가 다 다르니, 이외에도 맞춰야 할 조건은 너무도 많고, 이런 저런 조건을 모두 만족할 최적의 등산로는 어디에도 없다. 특히 서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참여 인원은 급격히 줄어든다.
처음 동호회를 만들며 가장 큰 목표점으로 뽑았던 세 산이 있다. 지리산과 설악산. 그리고 한라산. 지리산과 설악산이야 다들 연차가 부족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계획이 잡혔으니 참석 가능 인원이 적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반엔 진짜 다들 잔여 연차도 얼마 없고, 한라산은 최소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야만 하는 곳에 있으니, 최대한 참석 가능 인원을 늘려보고자 아예 일정을 다음 해로 미뤘다.
동호회 전 회장, 송님의 목표가 겨울 한라산 등산이다. 고로 송님은 반드시 참석. 나도 설산 등산이 정말 궁금했으니 참석. 대장인 윤님이 빠질리가 있나. 당연히 참석. 그래, 말이야 더 참석할 수있도록 1월에 계획 세우자 했으나, 결국 이 셋이 최대치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오히려 너무 첫 달이라 시작부터 연차를 등산에 태우기엔 부담이 될만도 했다.
겨울 설산이 목표니 더 미루지 않고 등산 날짜는 1월로 확정. 처음 1월 초로 잡았던 첫 일정은 각자 사정으로 조금씩 미뤄졌다. 최종으로 뽑힌 날짜는 1월 18일. 어차피 회원으로는 5인이 안 되니 비정기, 유닛 산행 일정으로 잡았다. 원하면 각자 객원으로 한 사람씩 더 데려오기로 했다. 윤님은 따로 데려올 이가 없다고 했고, 송님과 내가 각각 한 명씩 객원을 데려가기로 했다.
날짜도 정했고, 비행기편도 구했고. 같이 갈 인원도 정했으며 숙소도 다 예약했는데,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을 너무 늦게 준비했다.
[여러분? 안되는데요? 다들 이미 주무시러 가셨으려나]
[꽉차네요. 정원 150명. 진심 등산 열정이]
한라산 탐방 예약이 꽉 찼다. 한 달 전, 다음 달 등산 예약이 풀리면 바로 예약 했어야 했는데. 등산 날짜를 늦게 정하는 바람에 우리가 원한 날에 빈 자리가 없었다.
[미쳐버려 잠들지 못한다. 끝난 줄 알았건만]
[하하]
등산 일정을 더는 미루기도 어렵다. 단순 휴일도 아니고 모두 연차를 미리 신청해서 가는 등산이다. 이미 앞서 몇 번 일정이 미뤄지며 모두 최소 한 번은 휴가 날짜를 바꾼 적이 있다. 또 다시 날짜를 바꾸기엔 다른 동료들의 일정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 고로 날짜 변경은 포기. 아예 힌라산을 못 가게 될 지언정, 날짜를 뒤로 미루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취소표가 자주 나온다는 다른 등산객의 후기만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 예약. 보이는 즉시 예약]
성판악 코스에서 예약할 수 있는 시간대는 총 세 가지.
1. 5~8시
2. 8시~10시
3. 10~11시 30분.
10시 출발은 정상까지 못 올라 간다 생각하더라도 잡고, 5시는 좀 이르더라도 일단 잡는다. 8시~10시 시간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다른 사람도 다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이 자리 만큼은 끝까지 나지 않았다.
[와 미친 5시부터 8시]
[일단 들어오기는 했는데 저 시간 가능입니까]
그래도 계획한 당일. 취소표 하나는 획득했다. 그 다음 날 새벽에 두 자리가 풀렸으나 놓쳤고, 다음 날 다시 난 두 자리는 무사히 얻었다.
[이대로라면 나머지 2자리도 순조로울 듯. 보니까 게속 늦은 시간에 자리가 나는군요]
며칠동안 저녁 시간은 물론이요, 새벽, 점심 시간 틈날 떄마다 탐방센터로 들어가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월 7일. 한라산 가는 날까지 약 11일 남은 날. 여전히 한라산 취소표를 더 얻지 못한 상황에 날아온 비보.
[여러분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한라산 참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사람의 일정 하차. 윤님이 개인 사정으로 이번 산행에서 빠지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윤님과의 등산 산행은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남은 인원은 넷. 다섯으로 숙소부터 일정을 세웠던지라. 고민이 많았다. 아예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다시 다섯이 모일 날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일단 넷으로 갈 것인가. 결론은 후자였다. 날을 미룬다고 해도 다섯이 다 모일 수 있으리란 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목적은 설산. 날을 뒤로 미루면 설산의 전경을 보지 못 할 수 있으므로 다시 또 간다 하더라도 이번 일정은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숙소는 다시 잡았다. 일단 운전 가능 인원이 넷이나 되지만 다들 장롱 면허 보유자들. 여름이면 모를까 겨울에, 그것도 낯선 도로에 새벽 운전은 위험하다. 렌트카도 포기하고 한라산에만 초점을 두어 숙소를 정했다. 한라산 픽업 서비스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는 이미 예약 자리도 거의 다 찬 상태로 선택 불가. 그나마 성판악 코스와 가깝고, 금요일 서울에서 늦게 넘어오는 이들이 오기에도 괜찮은 호텔을 찾았다.
그리하여 성판악에서 비교적 가까이 있다는 호텔 난타로 숙소 확정. 일단 밥이고 뭐고 잘 곳과, 주요 목적지인 한라산만 일정에 추가하고, 나머지는 상황을 봐서 바로 바로 정하기로 했다. 그렇다. 이번 산행에 극 P만 남았던 것. 세울 계획이랄 것도 더는 없다.
윤님이 이런 이들만 보내기 영 불안했는지, 따로 시간내어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CCTV로 성판악 근처 날씨나 상황도 알 수 있으니 챙겨보고. 하. 불안하네. 정말. 공기층! 양말도, 모자도 바지도 얇은 거 여러개 겹쳐서 입어요! 모자는 비니가 좋으니 두 개 쓰고! 공기층, 그거만 생각해요. 패딩, 특히 롱패딩 같은 건 안 되고!"
순간 뜨끔했다. 일행 중 일부가 진심으로 한라산 복장으로 롱패딩은 어떤지 물어본 적이 있으니까.
이외에도 윤님은 간식이랑, 차. 체온 유지용 핫팩 등등. 필수로 챙길 준비물을 알려주었고, 내가 청바지를 입고 간다 하니 더욱 불안한 얼굴로 바지까지 빌려주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윤님의 바지 사이즈가 내겐 매우 작을텐데. 마음은 정말 감사하나, 현실이 불가능하다 답변 드리고, 일단 청바지는 안 입겠다 약속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윤님께 받은 조언들은 다른 일행에게도 모두 잘 전달했다. 정말 걱정마시라. 무사히 다녀오겠다고 약속도 했지. 사진 앞에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농담을 던졌다가 등짝을 세게 맞을 뻔 했다.
그 후로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서 어느새 16일. 나와 내 일행은 먼저 제주도로 내려가 숙소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날 금요일은 둘이서 뚜벅이로 제주 관광을 즐기고, 저녁엔 일찍 들어와 성판악 취소표를 기다렸다.
[저희 지금 제주공항 도착했어요!]
10시 35분. 다른 두 명도 제주 공항 도착. 늦은 시간이라 택시를 선택. 11시 조금 넘은 시간에 드디어 네 명 모두 숙소에 모였다.
잠들기 전 미리 가방을 챙기며 성판악 취소표를 확인한다. 다른 요일은 계속 자리가 났다가 사라지는데, 토요일은 영 바뀔 기미가 없다.
"정 안 되면, 영실 코스라도 가죠. 거긴 통제가 따로 없으니까."
"그럼 일단 탐방로 앞으로 이동은 하죠. 거기서 마지막까지 기다려보고, 한 자리 안 나면 취소하던가."
"그럼 몇 시가 좋으려나"
"8시까지니까 그 안에만 가서 기다리면 되죠."
너무 일찍 가도 취소표가 늦게 나거나 나오지 않는다면 추위에 떨고 있을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고로 기상은 느긋하게 5시 20분. 일어나자마자 취소표를 확인했으나, 여전히 없다. 모두 간단히 씻고, 정신을 깨워 숙소에서 나오니 6시 20분이다. 택시는 금방 잡혔다
도로엔 한라산으로 향하는 차가 무척 많았다. 서서히 동이 틀 모양새로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약 40분 가량을 달려 성판악 앞에 둔 상황.
"아...신분증!"
낮은 비명. 취소표도 없고, 신분증마저 다른 가방에 두고 온 일행의 표정이 급하게 어두워졌다. 본인은 안 가도 되니 셋이라도 가라 했으나,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갈 거면 같이 가고, 안 가면 다 같이 안 가는 거예요."
취소표는 둘째치고, 모바일 신분증이라도 급히 발급 받으려니 신분증 발급일을 모른다.
"날짜 기억해요?"
"아뇨. 아, 정말. 가방에 잘 챙겨두고...하."
"날짜를 어떻게 기억해요?"
"음. 난 기억하는데."
"신분증을 잃어버리거나 해서 급히 모바일로 받는 경우도 있을텐데, 그게 없다고 못 받으면 안 되지 않나? 날짜도 찾을 방법이 있겠죠!"
좀 더 차분히 찾아보니 정부24에서 발급일 조회도 가능하다.
"찾았어요!"
신분증은 무사히 해결. 이제 취소표만 남았다.
"정 안 되면 우리 입구만 찍고 가요! 다른 오름이라도 오르면 되는 거죠!"
말은 그리 하면서도 누구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요. 8시 취소표라도 나오면 출발하게."
"네!"
아이젠을 신고, 가방을 한 번 더 정리하는 사이.
7시 30분.
"됐다!! 됐어요!"
진짜 극적으로 얻은 취소표!
"우와!!"
"사실 조금 전에도 났는데, 놓쳤거든요. 하. 그래서 방금 것도 얼마나 걱정했던지!"
"진짜 다행이다! 이거, 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성공이네요!"
"맞아요!"
"오히려 날도 좀 밝았고, 렌턴도 없어도 되겠어요!"
내내 본인 표만 구하지 못 해 초조해 했던 일행도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이야, 운이 정말 좋아요! 마침 정상 통제도 풀렸다고 하고, 이렇게 극적으로 취소표도 얻고!"
"맞아요!"


7시 40분. 입장권을 찍고 들어간 다음 한 번 더 장비 점검. 스틱도 미리 꺼내들고 진짜 등산 시작!
즐겁고 가벼운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10분도 안 되어 만난 것은 우리를 반겨준 눈사람. 성판악 코스는 비교적 전반적으로 평탄하고, 경사가 있어도 심하진 않다. 그래도 산은 산.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꽤 많은 이들과 만나고, 앞으로 먼저 보내며 올랐다. 이번 산행이 첫 산행이라 산은 물론 오래 걷는 것도, 거의 처음인 일행이 있었으므로, 그를 기준삼아 자주 쉬어가며 숨을 골랐다. 덕분에 주변을 더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어떻게...다들 잘 올라가죠?"
"울님도 지금 잘 올라가고 있는걸요! 첫 등산인데 설산에 한라산이라니! 그러니 이정도면 정말 잘 가고 있어요!"
울님의 가족들은 평소에도 등산을 꽤 즐기셨던 터라, 첫 산으로 겨울 한라산을 간다는 울님을 걱정하면서도 가지말란 말 대신 이것저것 필수 장비와 조언을 챙겨 주셨고, 그 덕에 이리 잘 올라가고 있었다.
"어쩌죠? 이 속도로 정상 갈 수 있을까요?"
"네. 갈 수 있어요!"
[이 지역은 심정지환자 발생지역이우다. 무리하지마랑! 쉬엄쉬엄 갑서!]
"저것 좀 봐요. 무리하지 말라잖아요. 쉬엄 쉬엄가도 됩니다."
물론 중간에 남은 거리 안내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하니 여유가 그리 많진 않았다. 동절기엔 진달래 휴게소 통제 시간이 11시 30분, 정상에서 최종 하산 시간은 13시 30분이다.
"지금 오르는 것만큼만 해도 우린 계속 성공하고 있는 거예요!"
"맞아요. 그러니까 언제고 힘들면 쉬어요. 언제든지 내려가고 싶으면 말하고!"
"아뇨. 내려가고 싶지 않아요! 정상 보고싶단 말이에요!"
"좋아요! 정상 꼭 찍고 옵시다!"
날도 많이 풀려서 춥기보단 더웠다. 얇은 옷 여러 겹을 입고 오길 잘했다. 한 겹씩 너무 더울 때는 벗어서 체온을 조절했다. 쉴 때 추우면 다시 한 겹 입고, 또 오르다 더우면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많은 이들이 한 길로만 쭉 오르니 등산로 중앙의 눈은 매우 단단히 밟혀 안전하다. 다만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옆길은 좀 위험하다. 빠지면 제법 깊게 쌓인 눈으로 푹푹 다리가 빠지는지라, 되도록이면 옆길로 빠지는 것 없이, 잘 다져진 길 위에서 이동하려 했다.
오르는 동안 자주 쉬어주었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쉴만한 자리가 나올 때 뿐이다. 한 발만 옆으로 가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니, 앞서 간 이들이 먼저 꼭꼭 밟아 샛길로 만든 틈 없으면 쉴 수 없다. 물론 도저히 더는 못 가겠다 싶으면 우리가 옆길을 밟아 자리를 만들기도 했지. 이때 스패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스패츠는 다리 토시로, 신발과 바지 사이로 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장비다. 스패츠 없이 잔뜩 쌓인 눈길을 밟은 나와 일행은 신발 속으로 눈을 잔뜩 넣고 말았다.
"어으. 시원하다."
"시원하긴. 얼른 털어요!"
주변 기온도 그리 낮지 않으니 신발이나 양말이 조금 젖어도 금방 체온에 말랐다. 하지만 너무 자주 그러면 동상에 걸릴 위험만 올라갈 뿐이니, 눈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잠시 멈춰서 잘 털고 다시 출발했다.


해발 1000m 표지석에서 만난 작은 눈사람. 머리가 날아갔기에 다시 세워줬다. 여기서 주변 나무 풍경이 한 번 바뀌었다.


하늘로 쭉 뻗은 침엽수림. 이 겨울에도 푸른 색을 남긴 나무 사이를 걸으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9시 00분. 드디어 첫 휴게소인 속밭 휴게소 도착.

울님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 좀 길게 쉬어가기로 했다. 게다가 아침도 못 먹고 올랐으니, 쉬는 김에 이곳에서 김밥과 커피, 차로 배를 채웠다 추위 탓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활동에 질렸던 것인지 파리하던 율님의 안색에 다시금 피가 돌아 혈색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첫 산행임에도 준비성이 제일 철저했던 율님 덕분에 돋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었다. 눈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바지나 가방이 젖는 건 피할 수 있었다.

다시 체력이 차니, 자신감도 차올랐다. 시간은 여전히 간당간당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갈 수 있을 만큼은 가보겠다는 의지로 9시 29분, 다시 출발.






등산로 중간에 있는 표지판 기준으로 잘 따라 올라간다. 9시 47분. 드디어 성판악에서 힘든 구간 진입.
"여기부터 경사가 더 있을 거예요. 힘들면 꼭 말해요."
"네."
"일단 여기가 제일 어려운 구간이라 되어 있긴 한데. 난 여기. 이 구간보단 여기가 더 어렵던데."
송님이 더 어렵다고 말한 구간은 정상 직전 구간이다. 송님과 나는 몇 년 전 가을에 한라산을 오른 적 있었다. 그떄는 젊은 패기로 제대로 쉬지도 않고 강행군으로 뛰듯 올라가서 후다닥 내려오기 바빴었다. 그때도 한 6시 즈음 올라가서 한 시에 내려왔던 것 같은데. 이 시간에 산도 잘 안 탄 사람들이 이렇게 내려왔다고?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우릴 바라보던 택시 기사님 얼굴도 떠오른다.
"그땐 너무 쉬지 않고 올라서 그래요. 이번엔 힘들면 바로 바로 쉴 거니까, 여기만 지나면 됩니다."
난도는 A라고 하지만, 잔뜩 쌓인 눈 덕분에 등산로의 바위나 나무에 의한 요철이 거의 없다. 아이젠을 신고 오르니 미끄럽지도 않다. 오히려 눈이 완충 작용을 해서 무릎이나 다리 피로도는 낮다. 대신 온통 하얀 눈으로 쌓여 있으니 눈의 피로도가 상당하다. 선글라스나 고글을 챙겼으면 더욱 좋았겠으나, 챙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때요. 설산 마음에 들어요?"
"아뇨."
"엥? 왜요. 눈도 많고, 이런 산을 원한 거 아녔어요?"
"좋아요. 좋은데, 조금 아쉬워요. 내가 원한 설산은 이것보단 좀 더..."
송님은 나뭇가지에 잎 마냥 쌓인 눈을 기대하고 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눈이 온 지 시간도 꽤 지났고, 기온도 많이 올라서 나무 위 눈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속밭 휴게소를 지나 오르니 슬슬 가지에 걸린 눈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그것도 아쉬운 점이 더 많았다.

앞서 간 누군가가 만들어 둔 눈천사. 우리도 만들고 싶지만,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으므로 잠시 참고 올라간다.



"얼마나 남았어요?"
"거의 다 왔어요, 다 왔어."
"통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있어요! 충분합니다."
"혹여 못 간다고 해도 괜찮아요! 다음에 또 오면 되는 거고."
"다음이 있을까요."
"힘들면 여기서 내려가도"
"전 오르고 싶어요! 정상 정말 보고 싶단 말이에요."
남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으려 시계를 보지 않으려 해도, 등 뒤로 오르는 해가 정오까지 얼마 안 남았다 알려줬다.
"사라오름..."
10시 12분, 1차 큰 고비가 왔다. 사라오름으로 올라가는 길과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렸다.


과연 우리가 진달래 휴게소를 통제 전에 지날 수 있을까. 지나도 정상까지 오를 체력은 될까. 사라오름은 왕복 40분정도 걸리는 길이었고, 정상은 아직 한참 멀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오름만이라도 보고 가야하나.
"좋아요. 일단 정상으로 올라갑시다. 진달래에서 걸리면, 어차피 이리 내려와야 하니 사라오름이라도 보고 가죠."






좀 더 힘내서 올라가 본다. 경사는 조금씩 더 가팔라지지. 나무에 걸린 눈만큼 바닥에 쌓인 눈도 더 많아진다.
"이 정도면 만족?"
"음. 이건 너무 많아요."







송님이 생각한 설산 풍경을 보러 더욱 더 힘내서 올라간다. 나무에서 녹은 눈이 고드름으로 변했다. 눈 위는 햇살에 살짝 녹아 더욱 반짝인다. 대화는 점점 더 없어졌지만, 걷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대신 좀 더 자주 쉬었다.
"울님, 힘들면 가방 이리 주세요."
"아니, 제게 주세요!"
"제 가방이랑 바꿔 들어요. 조금 더 가벼울테니"
가장 힘들어 했던 울님과, 비교적 가벼운 가방을 가지고 있던 정님이 가방을 바꿔 들었다. 그러니 그나마 울님의 상태가 좀 나아져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 왔다!"
11시 11분.
진달래 대피소 도착.



잠시 숨도 돌리고 화장실도 다녀오니 25분. 곧 통제 된다는 안내 소리가 울렸다.
"11시 30분에 입산 통제 걸리니 정상으로 오르실 분들은 빨리 이동해 주세요! 위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좁으니 되도록 볼일을 빠르게 마치고 올라 주세요!"






좁아지면 얼마나 좁아지겠냐 했는데, 진짜 좁다. 막바지 휴게소에 몰렸던 인원이 줄줄이 기차처럼 한줄로 서서 오르는데, 한 발만 옆으로 딛어도 눈 속 깊이 빠진다.
여기서부턴 눈이 신발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끔 바위 틈으로 물이 흘러 꽤 깊은 구덩이가 파인 곳이 있는데, 그 위로 눈이 쌓여 있으면 어디가 그런 구덩이인지 밟기 전까진 알 방법이 없다. 고로 사람을 피한다고 눈 쌓인 옆길을 잘못 디뎠다간 쑥 구덩이에 빠져서 부상당할 수 있으니, 옆을 딛더라도 무게 중심은 길에 두고 반대 발로 먼저 눌러본 후에 딛어야 한다.










한 줄로 오르는 와중에 속도가 너무 쳐지면 뒷 사람도 쳐지니, 또 적당히 쉴 틈이라도 있으면 옆으로 빠져 쉬고, 뒤에 오는 사람을 먼저 보낸다. 반대쪽에서 먼저 등산을 찍고 성판악으로 하산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지라, 길이 더욱 좁게 느껴졌다. 오르는 이들은 이제 정상에서 강제 하산해야 할 시간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여기까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네이버 지도는 물론이고 피크민으로 다음 버섯이 곧 정상이라며 마지막까지 서로를 다독이며 올라갔다.
이제 백록담까지 남은 거리는 약 800m.
정상에서 반드시 하산해야 할 시간은 1시 30분. 남은 시간은 약 30분.
"여기가 끝이 아니었어요?"

저 멀리 정말 마지막으로 남은 언덕이 보였다. 나무보다 하얀 눈밭이 더 많이 보이는 언덕. 한줄로 난 길을 등산객이 잔뜩 채우고 있는 길. 한 눈에 들어오지만, 그 산에 오르는 이들의 크기가 새끼 손톱보다도 작게 보이는 거리.
"우리 내려갈까요?"
"네?"
"괜찮겠어요?"
울님은 멀찍이 보이는 정상 부근 언덕을 바라봤다.
"네. 내려가요."
정말 다 왔는데! 하지만 송님과 울님에게 남은 체력이 거의 바닥이었다. 30분 안에 가파른 계단 길을 오를 자신이 없었던 두 사람. 그리고 이 날 하필이면 이 둘의 몸 상태가 가장 안 좋은 상태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잘 왔고, 성공한 것이나 다음 없었다. 억지로 남은 시간을 강행해서 올라가면 오히려 이번 산행의 마무리가 안 좋을 확률이 높다. 웬만해선 내려가자 말 할 사람들이 아닌데. 고민 없이 내려간다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에 부친다는 뜻이었다.
"두 분은 어떻게 하실래요? 같이 내려갈까요?"
초입이었다면 같이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이 눈에 보이는데. 여기서 하산이라니.
'사진으로라도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얼마 안 남았다는 아쉬움과, 사진으로라도 정상을 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른 세 사람이 하산하는 동안에 내가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가면 세 명이 완전히 산을 나가기 전에 따라잡아 함께 하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허세 섞인 자신감이 있었다.
"그럼 저는 오르겠습니다. 먼저 내려가세요. 정상 찍고 얼른 따라 내려갈게요."
"네!"
"어, 저, 그럼 저도. 저도 정상 같이 찍고 오겠습니다."
송님과 울님은 하산. 정님과 나는 끝까지 오르는 것을 선택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없었다. 정상을 선택한 둘은 뛰듯이 올라갔다. 계단이 정말 끝이 없다.




"와, 힘들어."
지금까지는 쉬엄쉬엄 왔으니 전혀 힘들지 않다 했던 정님도 슬슬 힘에 부쳐하는게 보였다. 나도 갑자기 오르막에 속력을 내니 힘들기 시작했다. 숨이 턱끝으로 차올랐다.
마냥 빠르게만 올라가기엔 길은 여전히 좁고, 오르는 이와 내려오는 사람 서로를 배려하느라 막히는 구간이 많다. 고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어 오를 수 있을 때 더 빠르게 올라야 한다. 내려오는 이를 기다리며 잠시 멈추면,
"우린 남은 시간이 없는데. 곧 끝나는데."
뒷 사람 재촉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스스로도 초조해진다.
"물 좀..."
"안 돼. 다 올라가서, 정상 찍고 마셔."
나중에야 말한 사실이지만, 정님 말로는 이때 진심으로 내가 미웠단다. 목마르고 힘든데, 쉴 틈 없이 올라가라 했다고. 어쩐지. 그 후로 말 없이 더 빨리 오르더니만.


"정상이다!"
1시 16분. 드디어 백록담 정상에 도착했다. 그때서야 아래에서 느낀 미움이 사라졌다던가.
"와!"
쾌감. 만족감. 결국 정상을 찍고 말았다는 기쁨이 몰려왔다. 이 감정을 좀 더 만끽하고 싶었으나,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 많진 않았다.
정상엔 사람도 엄청 많았다. 정상석과 사진을 찍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우리도 얼른 맨 끝에 서서 겨우 물도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말 깔끔하다. 지난 가을엔 온통 안개가 가득해서 뭐가 뭔지 보이지 않았는데, 저 아래 구름이 깔린 위로는 하늘이 참 맑다. 백록담도 이토록 선명하게 보일 줄 몰랐다.
"생각보다 백록담이 가까워!"
더 깊이 들어간 분화구라 생각했는데, 눈 덕분일까. 훤히 드러난 백록담의 민낮은 생각보다 작고, 생각보다 가까웠다. 그리고 예뻤다.
"저기에 물이 보이면 어떤 모습일까?"
다시 와야 할 이유를 하나 더 만들고,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어째 줄이 안 줄어든다.

"여기야, 여기!"
보아하니 앞서 선 일행이 다른 곳 구경하는 일행을 부르고, 또 기다리던 일부는 다른 사람과 같이 도중에 빠져 나가 주변을 찍고, 다시 차례가 되면 돌아온다. 그렇게 새치기 아닌 새치기가 쌓이며 줄이 유지된다.
"모두! 곧 하산 시간입니다! 빠르게 내려갈 준비를 해주세요! 해가 지면 위험하오니, 꼭 하산 시간을 맞춰주세요!"
백록담 관리인의 목소리와 안내 방송이 들린다. 시간은 줄어들지. 줄은 늘어나지.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고 정상을 만끽하고 싶은데, 점점 여유가 사라진다. 특히 정님의 경우 이런 규율이나 규칙을 어기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 더욱 초조해했다. 사진도 급히 연속으로 찍었다.
"저희 먼저 찍어주실래요? 저희도 두 분 찍어드릴게요."
우리 앞에 선 분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단체 사진 찍어드리고, 둘이서도 사진을 찍었다. 백록담도 후다닥, 조금 쫒기듯 찍고, 주변 풍경도 급하지만 눈에 확실히 담고. 물론 그 와중에도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도 잊지 않았다.
본래는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려 했으나, 남은 일행이 원점 회귀를 선택했으니 다른 길은 없다. 관음사 역시 다음에 또 와야 할 이유로 남겨두고 하산. 내려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한줄로 서서 내려가니 속도는 더디다.




가장 막히는 구간에선 다들 옆길로 조금씩 빠지기도 했다. 우리도 한 번, 옆으로 빠져서 넓은 눈 밭 위에 눈천사 두 개 만들었다.
"안 무서워? 막 그냥 누워버리네. 그러다 푹 꺼지면 어쩌려고."
"진짜 눈사람 되는 거지 뭐."
두텁게 쌓인 눈 위로 쓰러지듯 누우면 정말 포근하다. 게다가 등산 후 대자로 뻗어 누우면, 온 몸이 푹 퍼져서 다시 일어나기 싫다. 하지만 하산을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고, 먼저 내려가고 있을 일행이 있다. 얼른 일어나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봤자 앞이 막히면 또 천천히 가야했지만 말이다.


오후 2시 6분. 먼저 내려간 일행이 하산 후 첫 대피소에 도착.
[어디세요? 저희 진달래 대피소입니다!]
그걸 우리는 2시 41분에야 봤다.
[하상학ㅎ 있습니다!]
[네? 일단 저희는 내려가고 있습니다 관음사 쪽일까요?]
[아닙니다 저희도 이제 진달래 도착했습니다]
[아하 그럼 첫번째 대피소 기다리겠습니다!]
[편하게 쉬시다 먼저 가셔도 괜찮습니다]
[조심해서 천천히 내려오세요 무리해서 빨리 오시면 안돼요, 걱정]
우리는 앞서 간 이들보다 약 40분 정도 늦게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 조금도 쉬지 않고 바로 내려갔다. 여기선 길이 좀 넓어지니, 앞서 가는 이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조금씩 앞지르며 달리는 속도로 내려갔다. 눈이 완충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생각도 않을 방법이지만, 그나마 맨땅보단 폭신한 눈 덕분에 좀 더 빠르게 내려갈 수 있었다.


3시 31분.
드디어 먼저 내려간 일행과 만났다. 두 분은 더 빨리, 더 먼저 내려갈 수 있었지만,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어차피 다 내려가서는 같이 움직여야 하니 서두를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우리를 기다리는 동안 충분히 쉴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해주셨다. 말이 쉬는 것이지, 피곤한 몸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었을텐데. 그리 말해주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 그리고 준비해준 간식 맛있었요. 정말 덕분에 잘 내려왔어요!"
"진짜요!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도 못 올 뻔."
내려오는 길에도 체력 저하가 심했던 두 사람. 그나마 쉬면서 내가 챙겨 준 과자로 당 보충을 해서 살아났다고, 미리 준비했던 간식이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정말 기뻤다. 그리고 이때 다시 떠올랐던 윤님. 등산에 당 보충용 간식을 꼭 챙기라던 윤님의 조언을 따라 한 덕이니, 윤님에게도 감사를. 다음 산행에선 윤님도 꼭 같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속밭 휴게소에서 탐방로까지는 넷 다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묵묵히 걸어서 내려왔다. 해도 슬슬 넘어가고, 낮 동안 눈이 녹아 나온 습기가 안개처럼 산에 깔리기 시작했다. 설핏 녹은 눈이 아이젠에 달라붙어서 걸음이 좀 더 무거워졌다. 쉬어봤자 가야 할 시간만 길어진다. 쉴 시간까지 아껴서 걸었다. 그 덕분에 예상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내려올 수 있었다.


하산 후 정상 인증 사진으로 인증서를 출력. 숙소로 이동하면 다신 안 나올 것을 알기에 정말 지치지만 밥부터 먹으러 갔다.
"제주에선 평점 4.5만 넘으면 일단 어디든 맛있다고 해요."
조실장 회센터였나. 찾아보니 평점도 무난하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듯 하고. 숙소와도 꽤 가깝다. 택시를 잡으려 했으나 잡히지 않아서 버스로 이동. 식사 시간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간간히 입을 열어 다음 일정을 이야기 했으나, 모두의 눈에 피로가 가득하다. 회 맛이 무슨 맛인지 모르고, 배를 채우는 목적만 달성했다.

카페고 뭐고 숙소로 바로 이동. 씻은 뒤엔 다들 기절하듯 잠들었다. 등산 전. 하산 후 뭘 할 지 고민했던 계획들은 하등 쓸모가 없었다. 숙소에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곧바로 침대에 누워 퍼지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명색이 등산 기록인데, 등산 자체에 대한 내용보단 등산 전 준비 과정에 대한 글이 더 많다. 그도 그럴것이, 겨울 설산은 정말 아름답지만, 보이는 풍경은 다른 계절에 비해선 단조로웠다. 상세히 묘사하려면 끝도 없겠지만, 단순히 요약하면 눈과 나무. 그리고 하늘이 전부다. 정상 가까이 올라가면 슬슬 먼 바다와 건물들이 보이지만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찬찬히 둘러보며 만끽하지. 이번 산행은 다소 촉박했고,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러니 산행길에 산길을 보고 느낀 것을 적기엔 양이 적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예 못 갈 뻔 했던 산을 올랐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산행은 충분히 즐거운 산행이었다. 거기에 일단 정상은 찍었으니까! 눈 쌓인 산을 오르고, 정상을 찍었다는 것. 무엇보다 그 길을 함께 간 이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등산 준비부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고, 등산 과정도 정말 고비가 많았다. 이곳에 적지 못한 과정까지 다 말하면 진짜 어떻게 다녀왔나 싶을 정도다. 게다가 그리 어렵게 모인 날. 모두 체력이 100은 커녕 50도 안 되는 상황에도 그 누구 하나 싫은 소리, 내색없이 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프면 일단 뭐든 예민하고 짜증날 법 한데, 어떻게 더 힘들수록 서로 북돋아 주고, 응원하며, 안 될 가능성보다 될 가능성을 점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간단하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힘들면 기다려주고, 밀어주고, 또 힘내주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번 산행. 한 겨울의 설산이지만 나는 그 어느때보다 따듯했던 산행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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